
소호하우스,
먼 친척들이 모인
큰 집 같은 곳.
런던에서 처음 방문했을 때, 대형 저택에 먼 일가친척들이 모여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네트워킹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 느슨한 편안함이었다.
노트 읽기 ↗A PERSONAL NOTEBOOK
요즘 눈이 가는 것들.
취향에서 시작해, 질문으로 남기는 기록.직접 경험한 장면과 관심사에서 시작한 노트입니다.

런던에서 처음 방문했을 때, 대형 저택에 먼 일가친척들이 모여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네트워킹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 느슨한 편안함이었다.
노트 읽기 ↗
뷰티를 출발점으로 와인·위스키, 의류와 통신까지. 업종은 달라도 유명한 이름이 좋은 사업이 되는 조건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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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코스메틱에서 직접 들은 야라 알남라의 이야기. 향의 강도보다 먼저, 그 제품이 들어갈 생활을 이해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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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는 부모가, 선택은 아이가. 아이들도 고객이지만, 브랜드가 모든 욕구를 시장으로 만들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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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감각적인 고객 경험, 그리고 헤일리 비버라는 브랜드. e.l.f.가 인수한 가치 가운데 그녀의 몫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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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cation의 선스크린 이야기. 바르는 제품을 넘어, 꺼내 보고 보여 주고 싶은 물건을 만드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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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에게 첫 라인시트를 보내던 설렘. 내가 선망했던 플랫폼들의 재편을 보며, 입점과 생존의 차이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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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월급을 받으면 사고 싶었던 비틀. 좋아하는 마음과 실제 수요, 헤리티지와 기회비용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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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틱형 영양 파우치를 구상하다 발견한 Lemme. 약의 유행과 오래 남을 영양 수요는 같은 시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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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브랜드가 비슷한 방향을 바라보는 이유. 시대의 감각과 경제성, 그리고 선택에 대한 생각.
노트 읽기개인적인 경험과 생각,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들을 기록합니다.










팬이 아티스트에게 느끼는 친밀감은 처음 보는 브랜드에 대한 경계심을 낮출 수 있다. 광고 모델을 빌리는 대신, 그 사람이 만든 제품을 산다는 감각이다. 하지만 팔로워 수는 구매자 수가 아니고, 첫 구매는 재구매가 아니다. 팬이 아니어도 고를 이유가 생겨야 브랜드는 창업자의 화면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나는 그래서 이 사례들을 단순한 성공·실패 순위로 묶고 싶지 않다. 큰 매출을 만든 브랜드, 유통과 소유 구조를 바꾼 브랜드, 활동을 중단한 브랜드, 공개 정보가 부족한 브랜드를 나눠 보고 싶다.
내 질문은 화장품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뷰티를 첫 번째 대표 사례로 놓는다.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과 생활 방식을 손에 쥘 수 있는 제품으로 바꾸는 분야. 여기서 출발해 와인과 위스키, 의류와 서비스로 시선을 넓혀 보면, 같은 유명세가 업종마다 다른 방식으로 사업에 쓰인다는 점이 보인다.
가수·배우뿐 아니라 모델과 리얼리티 스타의 브랜드도 포함했다.
| 아티스트 / 브랜드 | 분야 / 최초 론칭 |
|---|---|
| Rihanna Fenty Beauty | 메이크업 중심 2017.09.08 |
| Selena Gomez Rare Beauty | 메이크업 중심 2020.09.03 |
| Kylie Jenner Kylie Cosmetics | 메이크업 · 스킨케어 확장 2015.11 (Lip Kits 출발) |
| Hailey Bieber rhode | 스킨케어 · 립 · 색조 2022.06.15 |
| Jennifer Lopez JLo Beauty | 스킨케어 · 바디 2021.01.01 |
| Jared Leto Twentynine Palms | 스킨케어 · 바디 등 2022.10 |
| Kim Kardashian KKW Beauty / SKKN BY KIM | 메이크업 / 스킨케어 등 2017.06.21 / 2022.06.21 |
| Madonna MDNA SKIN | 프리미엄 스킨케어 · 기기 2014.02 (일본) |
Fenty — 누구의 불편을 해결하는지 선명했다.
리아나의 유명세만큼 중요한 것은 기존 색상 선택지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던 고객에게 제품을 제안했다는 점이라고 본다. 론칭 때의 40가지 파운데이션 색상과 Kendo의 사업 기반을 함께 봐야 한다. 창업자의 상징성과 실제로 고를 수 있는 색상이 만난 것이다.
Rare — 메시지를 제품이 받쳐 줬다.
정신건강이라는 메시지만으로 설명을 끝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주목하는 건 블러셔처럼 브랜드를 기억하게 하는 제품이 있다는 점이다. 철학에 공감해서 들어온 사람이 제품 때문에 머무르는 구조. 이것이 팬덤을 고객 관계로 바꾸는 방향 아닐까.
Kylie — 동경하던 룩에 구매 가능한 입구를 만들었다.
립스틱과 립라이너를 한 세트로 제안하는 Lip Kit는 ‘그녀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을 구체적인 구매 단위로 바꿨다고 생각한다. 다만 오래된 성공 수치를 지금의 성장률처럼 읽어서는 안 된다. 창업자와 팬이 나이를 먹고 취향이 바뀌어도, 제품이 새로운 고객을 만날 수 있는지가 다음 질문이다.
rhode — 제품과 일상 속 장면이 연결됐다.
피부 표현, 립 제품, 휴대폰 케이스를 하나의 생활 이미지로 이어 붙이는 방식이 흥미롭다. 내게는 헤일리의 이름을 로고에 붙인 것보다, 그녀가 상징하는 취향을 반복해서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든 브랜드에 가깝다. rhode와 10억 달러의 의미를 쓴 노트로 ↗
JLo Beauty의 유통 축소를 두고 “나이가 많아서”, “브랜딩이 촌스러워서”라고 설명하는 건 편하지만 입증하기 어렵다. 판매 채널 변화는 관찰할 수 있어도, 그 원인을 특정 이미지 하나로 확정할 자료는 부족하다. 신제품 출시가 이어지는 사업을 폐업 사례로 넣는 것도 맞지 않는다.
Twentynine Palms에서는 아티스트와 운영 파트너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사실에 더 눈이 간다. 누가 제품을 만들고, 돈을 조달하고, 재고와 고객 응대를 책임지는가. 유명한 이름도 계약과 실행 조직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다만 한쪽의 설명만으로 분쟁의 책임을 단정할 수는 없다.
KKW와 SKKN의 재편 역시 “컨투어링이 유행에서 밀려나 실패했다”는 한 문장으로 충분하지 않다. 브랜드명, 제품군, 소유 구조와 판매 조직이 바뀐 경로를 따로 봐야 한다. MDNA SKIN도 일부 제품의 생산 종료와 브랜드 전체의 성패를 같은 뜻으로 읽지 않으려 한다.
OEM·ODM이라는 제조 기반, 폭넓은 가격 포지셔닝, 다 쓰면 다시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점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제조원가와 소비자가의 차이가 그대로 이익은 아니다. 개발·안전성 검토·규제 대응, 최소 주문수량, 용기, 재고, 유통 수수료, 프로모션과 반품까지 남는다. 재구매도 소모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동 발생하지 않는다.
인지도 비용이 0원인 것도 아니다. 기존 팬에게 알리는 출발점은 유리하겠지만,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사의 매대에서 경쟁하고 팬이 아닌 사람에게 신뢰를 얻는 비용은 계속 든다. 그 이름의 이미지가 흔들릴 때 제품도 함께 영향을 받는 위험까지 포함해서 계산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셀럽이 자신의 이름을 사업으로 바꾸는 무대는 화장품에만 있지 않다. 와인과 증류주, 의류, 통신 서비스까지 이어진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제품에 반드시 본인의 이름이 적혀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쓰는 것과, 그 사람이 가진 취향·인지도·전달력을 사업에 투입하는 것은 다른 방식이다.
브래드 피트와 연결되는 와인 브랜드 Miraval은 셀럽의 감각과 전문 생산자의 역량이 만나는 사례다. Miraval은 공식 소개에서 피트의 감성과 Perrin 가문의 노하우를 함께 강조한다. 와인의 배경에는 프로방스라는 장소와 실제 양조 전문성이 있다. 피트 혼자 와인을 만드는 사업처럼 읽기보다, 그의 이름이 만들어 내는 관심과 전문가의 축적된 기술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보고 싶다. Miraval 공식 소개
내가 보는 매력은 ‘유명 배우가 마시는 술’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서 연상되는 취향과 삶의 장면을 와인 한 병으로 경험하게 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 장면이 구매의 계기라면, 다음 구매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와인 자체와 가격에 대한 판단일 것이다. 동경을 입구로 삼되, 제품의 세계 안에서 다시 평가받는 구조다.
2024년 비욘세는 Moët Hennessy와 함께 위스키 브랜드 SirDavis를 선보였다. 당시 발표는 그녀의 위스키 취향과 증조부 Davis Hogue의 이야기를 브랜드의 배경으로 소개한다. 여기서는 현재의 소유 구조나 성과가 아니라, 론칭 당시 개인의 서사를 전문 주류 기업과 함께 제품으로 옮긴 방식에 주목한다. SirDavis 론칭 발표 · 2024
내게 흥미로운 것은 팬이 좋아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위스키를 고르는 사람에게도 의미 있는 브랜드의 배경이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야기는 첫 관심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위스키를 계속 선택할 이유는 맛과 품질, 가격, 마시는 경험 안에서도 설명되어야 한다. 셀럽의 세계관과 그 업종의 기준이 만나는 지점이다.
Casamigos는 조지 클루니가 Rande Gerber, Mike Meldman과 함께 2013년에 만든 데킬라 브랜드다. 친구들과 즐기기 위한 술이라는 출발 이야기는 브랜드의 정체성이 됐고, 2017년 Diageo는 인수 계약을 발표했다. 혼자 만든 ‘클루니의 술’이 아니라 공동 창업자들과 만들어 낸 브랜드였다는 점도 중요하다. Diageo 발표
내게 이 사례는 팬심뿐 아니라 그들이 상징하는 사교와 여유의 분위기를 파는 방식으로 보인다. 동시에 그 분위기를 더 많은 시장에 전달하려면 전문 유통 조직이 필요하다. 스타의 이야기가 문을 열고, 사업 파트너가 제품을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곳을 넓히는 것이다. 다만 인수라는 사건을 이후의 영구적인 성공 보증으로 읽을 수는 없다.
Aviation American Gin에서 레이놀즈의 역할은 단순 광고 모델만이 아니었다. Diageo의 2020년 인수 발표는 그를 공동 소유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방향을 이끄는 인물로 설명한다. 그는 이미 존재하던 사업에 참여했고, Maximum Effort Marketing과 함께 브랜드를 키우는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Aviation 인수 발표
의류 분야에서는 킴 카다시안의 SKIMS에서 흥미로운 조합이 보인다. Nike와 SKIMS는 2025년 2월 NikeSKIMS라는 새 브랜드를 발표했다. 그리고 2026년 봄 컬렉션 캠페인의 주인공으로 BLACKPINK의 리사를 내세웠다. 정확히는 브랜드 간 파트너십에 아티스트의 캠페인 참여가 더해진 구조다. 리사가 공동 창업자나 제품의 공동 디자이너로 참여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NikeSKIMS 출범 발표 · 리사 캠페인 공식 발표
나는 이 ‘이중 조합’이 영리하다고 느낀다. SKIMS가 가진 몸의 실루엣과 핏에 대한 감각에 Nike의 스포츠 전문성을 더하고, 그것을 리사라는 동시대의 얼굴과 움직임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발레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과 댄서이기도 한 리사의 조합은, 단순히 유명한 얼굴 하나를 더하는 것보다 설득력 있는 장면으로 읽힌다.
브랜드의 추구미, 메이저 브랜드의 역량, 그리고 지금 사람들이 닮고 싶어 하는 인물. 세 요소가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협업은 이름값의 합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메이저 브랜드는 제품을 믿을 이유를, 트렌드세터는 지금 그것을 갖고 싶은 이유를 보탠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역할을 맡는 조합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킴이 자기 자신만을 영원한 워너비로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창업자의 취향에서 시작했더라도 브랜드의 무대를 다른 인물에게 열어 줄 수 있다.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중심은 유지하되, 시대가 원하는 몸의 이미지와 생활 방식, 표현하는 얼굴은 계속 새롭게 조합하는 것. 내게는 과거의 인기를 반복해서 쓰는 것보다 오래갈 가능성이 있는 방식으로 보인다.
물론 유행하는 사람을 기용한다고 모두 좋은 협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와 인물, 제품 사이에 연결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또한 이 캠페인의 화제성이 실제 재구매나 이익으로 이어졌는지는 별도로 확인할 문제다. 여기서 내가 높이 보는 것은 입증된 매출 성과가 아니라, 자기다움을 고정된 이미지로 보존하지 않고 시대와 연결하는 기획 방식이다.
Aviation에서 본 라이언 레이놀즈의 또 다른 사업은 술과 꽤 거리가 멀다. 선불 이동통신 브랜드 Mint Mobile이다. 레이놀즈는 이곳에서도 지분을 가진 참여자이자 크리에이티브 역할을 맡았다. T-Mobile은 2024년 5월 Mint를 포함한 Ka’ena 인수를 완료하면서, 레이놀즈가 Mint의 크리에이티브 역할을 이어 간다고 밝혔다. 직접 통신망을 만든 창업자와, 투자·마케팅에 참여한 인물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지분·역할 설명 · 인수 완료 발표
그가 George Dewey와 2018년 공동 설립한 Maximum Effort Productions까지 함께 보면, 배우의 얼굴을 빌려주는 것에서 더 나아간 그림이 보인다.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별도의 조직으로 만들고, 다른 사업에서는 자신의 전달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Maximum Effort 공동 설립 기록
내가 보는 공통 자산은 진을 만드는 기술이나 통신 기술 자체가 아니다. 사람들이 광고도 하나의 콘텐츠처럼 보게 만드는 말투와 유머, 관심을 붙잡는 감각이다. 그 감각을 업종마다 다른 구매 이유에 연결하는 능력. 술에서는 취향과 분위기가 입구가 될 수 있지만, 통신에서는 요금과 서비스가 선택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같은 사람이 등장해도 고객이 돈을 내는 이유까지 같을 수는 없다.
이 사례들을 모두 팬덤 비즈니스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팬덤이 출발 자산일 수는 있어도 최종 시장의 경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셀럽을 좋아해서 들어온 사람뿐 아니라, 그를 잘 몰라도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하는 사람이 생겨야 한다. 자신의 이미지를 상품에 복사하는 것과, 자신의 강점을 다른 산업의 필요에 연결하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본인 이름으로 여러 사업을 한다’는 말을 조금 다르게 읽고 싶다. 직접 창업하고 소유하는 역할, 기존 회사에 투자하는 역할, 제품과 커뮤니케이션을 기획하는 역할, 캠페인의 얼굴이 되는 역할은 서로 다르다. 무엇을 맡고 어떤 전문 파트너와 결합하는지가 보여야, 유명세가 사업의 어느 부분에서 실제 가치를 만드는지도 보인다.
내 전망은 셀럽 브랜드가 사라진다는 쪽이 아니다. 그 이름이 왜 이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사용한 사람이 왜 다시 돈을 낼지를 더 설득력 있게 보여 줘야 한다는 쪽이다. 창업자가 개발 회의에 참석하는 장면만큼 중요한 것은 그 참여가 실제 제품과 고객 경험의 차이로 이어졌는가다.
내가 사업성을 본다면 팔로워 수보다 팬이 아닌 고객의 구매, 재구매율, 할인 없이 팔리는 비중, 유통비를 뺀 이익, 재고가 현금으로 돌아오는 속도를 보고 싶다. 모두 중요한 지표지만, 이 브랜드들의 실제 내부 수치가 공개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결국 업종이 달라도 유명세와 전문성을 연결하는 파트너의 일이 남는다. 와인과 위스키에는 생산과 유통이, 의류에는 핏과 상품 기획이, 통신에는 서비스 운영이 필요하다. 내가 출발한 K-컬쳐의 자리로 돌아오면 할 수 있는 일도 보인다. “우리가 잘 만드니 이름을 붙여 주세요”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취향과 팬의 생활을 읽고 제품으로 번역하는 파트너가 되는 것. 동시에 권한과 책임, 품질과 일정, 규제와 재고까지 설계하는 것. 제조 기술과 유명세 사이의 빈칸은 결국 기획과 운영으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의 인상과 별개로, 확장 이후의 경험도 궁금해졌다. 히치하이커의 칼럼은 소호하우스의 규모 확장과 커뮤니티의 고유한 매력 사이에 긴장이 있다고 본다. 참고 기사 읽기
내가 매력적으로 느낀 건 사람의 수보다 그들 사이의 분위기였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과,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은 같은 일일까.
Forbes 기사는 어린이용 마스크팩을 선보인 Rini에 대한 온라인 반발과, 연령에 맞는 제품의 등장을 반기는 부모들의 시각을 함께 다룬다. 아이들의 관심이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관심을 어디까지 시장으로 만들어도 되는가는 다른 질문이다.
마스크팩과 안티에이징은 같은 범주가 아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소비에 노화 방지라는 필요까지 끌어들이는 방향은 경계하고 싶다. 아이에게 맞는 관리를 알려 주는 것과, 더 일찍 외모를 걱정하게 만드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고객으로 인정하되, 모든 욕구를 판매 기회로 바꾸지는 않는 것.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뿐 아니라 진열하고 추천하는 유통사,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까지 어떤 선을 지킬지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WGSN의 「인사이트: 알파 뷰티 우선순위 2026/27」을 읽으며, 이 시장에는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진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점이 더 선명해졌다. 아이는 또래와 연결되는 감각, 갖고 싶은 모습, 직접 골랐다는 만족을 찾는다. 부모는 그 제품이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지, 설명을 믿어도 되는지 판단한다. 자료는 알파 세대의 구매 영향력과 함께, 최종 결제자의 가치관과 안전에 대한 기대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고서가 Ulta Beauty를 인용해 소개한 미국의 뷰티 입문 평균 연령은 밀레니얼 세대 15.4세, Z세대 12.8세, 알파 세대 8세다. 모든 아이에게 적용할 숫자는 아니지만, 브랜드가 만나는 첫 고객의 나이가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 수치의 원조사 표본과 조사 방식은 첨부 자료에 상세히 제시되어 있지 않아, 한국을 포함한 전체 알파 세대의 평균으로 일반화하지는 않는다.
WGSN은 외모 필터와 알고리즘 속 비교, 성인 중심의 미적 기준에 대한 이른 노출을 위험 요인으로 짚는다. 동시에 뷰티를 호기심과 자기표현의 통로로 바라본다. 아이의 관심을 무조건 막는 것과, 그 관심을 끝없이 소비로 확장하는 것 사이에 교육이라는 역할이 있다는 이야기다.
자료가 제안하는 기회는 성인의 루틴을 작게 포장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카테고리마다 아이가 스스로 돌보는 법을 익히도록 돕는 방향에 가깝다.
스킨케어 — 복잡한 루틴보다 이해하기 쉬운 기본.
보고서는 세정·보습·보호라는 간단한 구성과 명확한 사용 안내를 강조한다. 부모에게는 근거와 설명을, 아이에게는 재미있고 따라 하기 쉬운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Bubble과 「인사이드 아웃 2」의 협업은 아이에게 익숙한 문화적 언어를 활용한 사례로 소개된다.
색조 — 결점을 감추는 의무보다 표현하는 놀이.
색과 패키지, 수집의 즐거움뿐 아니라 다양한 피부 톤, 연령에 맞는 사용 경험과 교육을 함께 고려한다. YAWN과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Play Lab 사례는 메이크업을 발견과 실험의 공간으로 보는 접근이다.
헤어케어 — 유행하는 머리와 자기 머리를 이해하는 일.
모발 유형에 맞는 관리 교육, 남학생의 스타일링 관심, 가족이 함께 쓰는 제품이 주요 방향으로 제시된다. 하나의 이상적인 외모를 따라가기보다 각자의 모발을 이해하도록 돕는 기회다.
바디케어·웰니스 — 감각적인 즐거움과 몸의 변화에 대한 안내.
향과 질감으로 일상을 즐겁게 만드는 Allkinds 같은 사례와 함께, 사춘기·월경에 대한 쉬운 교육, 야외 활동, 디지털 휴식이 다뤄진다. 여기서 웰니스는 또 하나의 외모 관리 과제라기보다 성장 과정에서 자신을 돌보는 경험으로 확장된다.
내게 남는 것은 ‘알파 세대에게 무엇을 더 팔까’보다 ‘이 아이가 자라면서도 믿을 수 있는 브랜드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다.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이유와 부모가 허락할 수 있는 이유는 달라도, 결국 같은 제품 안에서 만나야 한다.
멋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을 존중하는 것과 더 빨리 어른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다르다. 재미를 설계하되 외모 불안을 함께 팔지 않는 것. 필요한 관리를 설명하되 아직 필요하지 않은 고민을 만들지 않는 것. 아이들의 취향을 만드는 어른들의 책임은, 무엇을 출시할지뿐 아니라 무엇을 권하지 않을지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료 요약: Hannah Mauser, WGSN, 「인사이트: 알파 뷰티 우선순위 2026/27」, 2026.01.05. 사용자 제공 PDF의 ‘중요 사항’, ‘근거’, 카테고리별 전략(PDF 2–9쪽)을 참고했다. 수치와 브랜드 사례는 해당 자료가 인용·소개한 내용이며, 조사 결과·전망과 필자의 해석을 구분했다. 브랜드 사례의 소개는 개별 제품의 안전성·효능을 보증하거나 사용을 권하는 의미가 아니다.
e.l.f.가 2025년 5월 발표한 거래 가치는 최대 10억 달러였다. 거래 종결 시 8억 달러와, 이후 3년간 성장 목표에 따른 최대 2억 달러의 추가 지급으로 구성된다. 인수는 2025년 8월 5일 완료됐다. 전액이 처음부터 확정된 대가는 아니며, 헤일리 개인이 받은 금액을 뜻하지도 않는다. 인수 완료 공시
성장은 이미 숫자로 나타나고 있었다. 인수 발표 자료에 따르면 rhode의 2025년 3월 말까지 직전 12개월 순매출은 2억 1,200만 달러였다. 같은 발표에서 헤일리는 인수 후에도 창업자이자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혁신 책임자로 참여한다고 밝혔다. 인수 발표 자료
나는 이 거래가 몇 개의 제품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취향을 사람들이 원하는 상품과 경험으로 바꾸는 능력에도 값을 매긴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거래가의 몇 퍼센트가 그녀의 개인 브랜드 가치인지 따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품, 팀, 고객 관계, 유통 확장에 대한 기대가 함께 얽혀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제품과 더 넓은 유통망을 갖게 될수록 궁금해지는 건 성장의 크기보다 성장의 모양이다.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브랜드가 되어도, 지금의 갖고 싶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녀가 만든 취향이 한 사람의 인기와 함께 움직이는 데 그칠지, 다른 사람도 이어 갈 수 있는 브랜드의 언어가 될지. 내가 앞으로 보고 싶은 건 제품 수보다 그 변화다.
그런데 어려움은 비단 개인 브랜드만의 사정이 아니었다. 당시 내가 느끼기에, 반드시 들어가고 싶었던 거대 플랫폼들도 보다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컬렉션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가 설 자리는 더 좁아지는 것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단절된 사회에서 온라인은 새로운 기회의 창구가 되었다. 개인 SNS를 통해 브랜드가 고객에게 직접 말을 걸 수 있게 됐다. 플랫폼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선망했던 럭셔리 플랫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재편을 보며, 규모와 명성이 사업의 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Farfetch — 쿠팡 아래 사업을 이어 가다.
쿠팡은 2024년 1월 Farfetch 자산 인수를 완료했다. 당시 발표는 5억 달러의 자금 접근성을 제공해 서비스의 지속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화려한 성장 이후,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 자본과 운영 기반이 중요해진 장면이었다. 공식 발표 ↗
YNAP — Mytheresa와 한 그룹이 되다.
2025년 4월 Mytheresa의 YNAP 인수가 완료됐다. 이후 모회사는 LuxExperience로 이름을 바꿨고, Richemont는 그 모회사의 지분 33%를 받았다. 과거 선망의 대상이었던 Net-A-Porter와 Mr Porter가 새로운 그룹 안에서 다음 단계를 모색하게 된 것이다. 단순히 이름 하나가 사라진 것보다, 사업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구조가 바뀐 사건에 가깝다. 인수 완료 발표 ↗
Matches — 법정관리 이후, 재출범을 예고하다.
Matchesfashion의 기존 운영 법인은 2024년 3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다만 그 이름까지 영원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현재 Matches 공식 사이트는 Hulcan Group 소속으로 2026년 재출범을 예고하고 있다. 기존 법인의 위기와 브랜드의 다음 장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법인 공시 ↗ · 재출범 안내 ↗
SSENSE — 창업자들이 다시 사업을 이어 가다.
몬트리올 기반의 SSENSE도 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2025년 캐나다의 채권자 보호·구조조정 절차인 CCAA에 들어갔고, 2026년 1월 창업자인 Atallah 형제들과 전략적 파트너가 제출한 인수안이 선정됐다. 이어 2월 13일 창업자 주도 인수 거래가 완료되며 사업을 유지하게 됐다. 폐업이나 다른 대기업으로의 매각과는 다른 경로다. 다만 사업의 존속이 곧 수익성 회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례 역시 플랫폼이 살아남는 것과 건강한 사업으로 자리 잡는 것 사이의 거리를 생각하게 한다. 회사 발표 · 거래 완료 보도
그들이 겪은 위기와 내 브랜드의 경험을 같은 규모의 이야기로 볼 수는 없다. 다만 화려한 이름과 매출 뒤에 비용, 재고, 현금흐름이라는 현실이 있다는 점은 낯설지 않다.
좋은 플랫폼에 입점하는 것은 분명 기회였다. 하지만 그 기회가 곧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를 뜻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어디에서 팔리는지만큼, 어떤 비용으로 팔고 무엇이 남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거대 플랫폼들의 재편을 보며 당시 내가 겪었던 혼란과 매몰비용을 다시 떠올린다. Emma에게 라인시트를 보내던 설렘은 여전히 소중하다. 그 설렘을 오래 이어 갈 수 있는 구조가 무엇인지, 지금의 나는 그 질문을 함께 한다.
내가 이 브랜드에서 읽는 건 선크림을 꼭 발라야 하는 제품에서, 한번 꺼내 보고 싶은 물건으로 바꾸려는 시도다. 레트로한 글자와 색, 휴가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 디저트 같은 연출은 제품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분위기를 만든다.
패키지는 내용물을 담는 용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손으로 어떻게 다루는지, 욕실에 놓였을 때 어떤 모습인지, 가방에서 꺼냈을 때 어떤 대화가 시작되는지까지 영향을 준다. “이거 선크림이야”라는 한마디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물건이라면, 제품 자체가 브랜드를 소개하는 매체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눈길을 끄는 패키지가 기능과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FDA는 2025년 8월 경고 서한에서 Classic Whip SPF 30과 Classic Whip Glow SPF 30의 무스 제형 판매 요건 문제, 휘핑크림 용기와 닮은 포장으로 인한 식품 오인·우발적 섭취 위험을 지적했다. 단순히 표현 몇 개에 대한 지적만은 아니었다. FDA 경고 서한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처음의 질문이 조금 달라진다. 갖고 싶은 물건을 만드는 것과, 무엇이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명확하게 전달하는 일을 함께 해내야 한다. 재미를 설계하는 능력만큼 오해를 줄이는 능력도 제품 개발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Vacation이 흥미로운 건 성분 경쟁이 끝났다는 증거여서가 아니다. 제품을 선택할 이유가 내용물뿐 아니라 사용하는 행동과 소유하는 기분에도 있다는 점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싶은 다음 혁신도 새로운 성분 하나뿐 아니라, 좋은 제품을 더 잘 경험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2011년 등장한 마지막 세대 비틀은 폭스바겐 스스로도 라이프스타일 모델이라고 소개했던 차다. Golf와 여러 부품을 공유하면서도 디자인과 개성을 상품가치로 삼았다. 문제는 사람들이 비틀을 좋아하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점이었다.
| 연도 | 판매량 |
|---|---|
| 2013 | 43,134대 |
| 2014 | 29,182대 |
| 2015 | 22,667대 |
| 2016 | 15,667대 |
| 2017 | 15,166대 |
| 2018 | 14,411대 |
| 2019 | 17,215대 |
2013년 43,134대에서 2018년 14,411대. 미국 판매는 약 66.6% 줄었다. 마지막 해인 2019년에는 17,215대로 반등했지만, 2013년 수준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었다. 이 숫자는 미국 시장의 판매량이지 글로벌 판매량이나 모델별 손익은 아니다. 연도별 판매 자료
이쯤 되면 질문이 달라진다. “비틀을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그중 실제로 신차 비틀에 돈을 내는 사람은 얼마나 남았는가?”
브랜드 자산이 강하다고 반드시 좋은 사업은 아니다. 비틀에는 돈으로 만들기 어려운 자산이 많았다. 헤리티지, 인지도, 독보적인 실루엣, 향수, 대중문화, 팬덤. 무엇보다 길에서 1초 만에 알아보는 디자인.
그런데 자동차를 선택할 때는 공간, 승하차 편의성, 활용성, 연비 같은 현실적인 조건도 함께 따진다. 둥근 지붕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시절 뒷좌석에 앉은 나는 여전히 머리를 부딪혔다.
나는 “판매가 줄어서 단종됐다”는 설명만으로 이 이야기를 끝내고 싶지 않다. 기업의 질문은 한 단계 더 나아가기 때문이다. 이 브랜드 자산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자동차 한 모델을 유지하려면 생산라인뿐 아니라 개발, 설계, 인증, 금형, 부품과 공급망, 품질관리, 마케팅, 딜러 교육, 재고, 그리고 다음 세대 모델까지 생각해야 한다. 전동화라는 큰 전환기에는 같은 돈과 인력을 어디에 쓸지가 더 중요해진다.
실제로 단종 발표 당시 폭스바겐 미국 법인은 가족 중심의 종합 자동차 브랜드로의 전환과 전동화 전략을 언급하며, 당장 비틀을 대체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당시 발표문
여기서 내가 떠올리는 질문은 이렇다. 판매가 줄어드는 아이콘의 다음 세대에 투자할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하는 SUV와 EV에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할 것인가. 이것은 내가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읽는 질문이지, 공개되지 않은 폭스바겐 내부의 모델별 손익이나 투자 계산을 확인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Final Edition을 만들었다. 과거 모델을 떠올리게 하는 색과 크롬 디테일, 전용 로고를 넣어 작별도 하나의 브랜드 경험으로 만들었다. Final Edition 공식 소개
내게는 폭스바겐이 끝낸 것이 Beetle이라는 기억보다, Beetle을 계속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업에 가까워 보인다. 이 둘은 꽤 다르다.
아직 사랑받고 있을 때 제대로 끝내는 것이 헤리티지를 보존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제품을 없앰으로써 브랜드를 보존하는 것.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그 가능성이 흥미롭다.
브랜드 일을 하다 보면 쉽게 이런 말을 한다. “이건 우리 브랜드의 헤리티지입니다.” “이 제품은 상징성이 있습니다.” “오랜 고객들이 좋아합니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기업은 한 가지 질문을 더 해야 한다.
연간 10억을 쓰면서? 100억을 쓰면서? 적자를 감수하면서? 아니면 다른 성장사업의 투자를 포기하면서까지? 이 금액들은 비틀의 실제 비용이 아니라, 감성을 지키는 대가를 생각해 보기 위한 가정이다.
브랜드에는 재무제표에 온전히 잡히지 않는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지키는 데도 돈이 든다. 어느 순간부터 그 돈은 단순한 유지비가 아니라 기회비용이 된다. 비틀은 브랜드 가치가 없어서 사라진 제품이 아니라, 강한 상징성을 가지고도 생산이 끝난 제품이라는 점에서 오래 생각하게 한다.
2026년 8월 25일 공동창업자 Simon Huck이 출연한 팟캐스트의 소개에는 Lemme가 그해 매출 2억 달러를 넘길 전망이라고 적혀 있다. 이미 확정된 연간 실적이 아니라, 당시 제시된 전망이다. 공개된 감사 재무제표나 채널별 순매출·이익률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공동창업자 출연 회차 소개
온라인에 유통되는 초기 누적 매출이나 TikTok 월 판매액 추정치를 모두 더해 ‘현재 연매출’로 만들 수는 없다. 소비자가 결제한 판매액과 회사에 잡히는 매출도 같지 않다. 숫자의 크기보다 먼저 기간, 채널, 할인·반품 포함 여부를 봐야 한다.
확인되는 구조는 자사몰의 단품·정기구독 판매와 외부 유통의 결합이다. 공식 Reset 안내 페이지는 확인 시점에 단품 80달러, 4주 주기 구독 64달러를 표시했다. 여러 달 반복해서 구매하는 구조를 설계한 셈이다. 가격과 프로모션은 바뀔 수 있고, 실제 구독 유지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공식 판매 안내
2026년 1월에는 미국 Walmart 2,000여 매장으로 확대했다. 수면·소화·여성 웰니스 등 서로 다른 관심사를 여러 제품으로 연결하고, 온라인에서 알게 된 브랜드를 일상적인 쇼핑 장소에서도 만나게 한다. Walmart 진출 발표
내 해석으로는 유명인의 인지도가 첫 방문을 만드는 데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낮은 고객획득비용이나 높은 이익률이 입증되지는 않는다. 자사몰은 배송·광고 비용을, 외부 유통은 도매 조건·판촉·재고 부담을 함께 봐야 한다. 채널별 매출 비중과 제품별 매출 순위는 확인할 수 없어 단정하지 않는다.
Lemme의 GLP-1 Daily 안내 페이지는 현재 Reset으로 연결되며, 체내 GLP-1 생성 지원과 식욕·체중 관리 관련 문구를 사용한다. 레몬·붉은 오렌지·사프란 추출물의 연구를 제시한다. 이는 브랜드의 광고 주장이지, 여기서 제품의 효능을 보증하는 말은 아니다.
동시에 브랜드는 Reset에 GLP-1이 들어 있지 않으며 GLP-1 작용제 의약품도 아니라고 명시한다. 체내 호르몬 지표에 관한 원료 연구를 위고비·마운자로 같은 처방약의 감량 효과와 동일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개별 원료 연구와 최종 배합 제품의 임상 근거도 구분해야 한다. 브랜드의 제품 구분 안내
2025년 제기된 소송에서는 식욕·감량 광고의 근거와 배합 제품의 임상시험 여부가 문제로 제기됐다. 확인한 TINA 소송 추적 페이지는 진행 중으로 표시한다. 이는 원고 측 주장과 해당 사이트의 상태 표기이며, 위법이나 무효능이 판결로 확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GLP-1’이라는 이름이 만들어 내는 기대와 실제 입증 범위 사이의 간격이다. 광고 관련 소송 추적
내 아이디어는 식욕을 더 낮추는 제품이 아니다. 먹는 양이 줄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영양 공백을 보완하는 제품이다. 둘은 같은 유행을 바라보지만 해결하려는 문제가 다르다.
GLP-1 계열 치료가 모두를 영양결핍이나 쇠약으로 이끈다는 뜻은 아니다. 적절한 대상에서는 치료 이점이 있다. 다만 섭취량 감소와 체중감량 과정에서 영양상태·근육 기능을 함께 살펴야 한다. 모든 부작용이 영양 부족 때문인 것도 아니며, 제지방 감소량을 전부 근육 손실로 읽어서도 안 된다. 2025년 네 학회 공동 권고는 개인별 영양 평가, 적절한 식사와 단백질, 저항운동을 함께 강조한다. 영양 관리 공동 권고
작은 스틱은 휴대성과 섭취 부담을 줄이는 아이디어다. 하지만 비타민·미네랄을 담았다고 하루에 필요한 에너지·단백질·필수지방·수분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하루 최소 영양’이 있는 것도 아니다. 비타민 제품을 식사나 근육 관리의 대체재처럼 팔고 싶지는 않다.
비오틴도 막연히 많이 넣을 성분은 아니다. 결핍은 드물고, 추가 섭취가 누구에게나 모발 개선을 보장하지 않는다. 고용량은 일부 혈액검사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배합은 실제 섭취 부족, 복용약, 건강상태를 검토한 뒤 전문가와 설계해야 한다. NIH 비오틴 안내
그래서 내가 먼저 검증하고 싶은 것은 ‘얼마나 많은 성분을 넣나’가 아니다. 적게 먹는 사람이 불편 없이 먹을 수 있는 맛과 양인지, 기존 식사를 보완하는지, 두 번째 상자도 자기 돈으로 살 이유가 있는지다. 이는 아직 제품의 안전성·효능이 검증됐다는 뜻이 아닌, 개발 단계의 질문이다.
내 전망은 이렇다. ‘약처럼 살을 빼 준다’는 기대에 기대는 보충제보다, 실제 섭취의 어려움을 덜어 주는 영양 제품이 오래 남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몇 년간 성장한다고 확정할 근거는 없다. 치료 접근성, 지속 사용과 중단, 실제 영양 필요, 지불 의사, 대체 식품과의 경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미 Nestlé Health Science는 2024년에 GLP-1 이용자를 위한 영양 지원 플랫폼을 내놓았다. 빈 시장을 발견한 것은 아니다. 수요가 주목받고 있다는 신호인 동시에, 영양 연구와 유통 기반을 갖춘 경쟁자가 있다는 뜻이다. Nestlé의 시장 진입
Lemme 역시 제품군과 유통을 넓혀 성장할 여지는 있다. 반면 과장된 기대가 신뢰를 훼손하면, 유명인의 노출이 리스크를 더 크게 만들 수도 있다. 내게 이 브랜드의 다음 관전 포인트는 더 많은 신제품보다, 근거에 맞는 약속으로 반복 구매를 만들 수 있는가다.
내 아이디어도 마찬가지다. ‘GLP-1 사용자 수’가 곧 ‘내 제품 고객 수’는 아니다. 영양 보완이 필요한 사람 중에서 이 제형을 원하고, 비용을 감당하며, 계속 선택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약을 그만둔 뒤에도 필요한 제품일까. 나는 그 질문부터 사업모델을 다시 그려 보고 싶다.
하지만 시대의 기분만으로 트렌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머릿속에 떠오른 색을 실제로 염색하고, 상상한 형태를 재단하고, 매장에서 팔 수 있는 가격으로 만드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컬러와 소재, 패턴과 실루엣은 결국 원사·원단·가공·샘플·생산·물류의 비용으로 번역된다. 최소 주문 수량과 납기, 목표 가격과 예상 수요도 선택에 영향을 준다. 같은 아이디어라도 어떤 원단을 구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만들 수 있는지에 따라 다른 옷이 된다.
그래서 나는 경제성을 창작의 반대편에 놓고 싶지 않다. 창작이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는지를 결정하는 조건 중 하나로 보고 싶다. 다만 모든 브랜드가 같은 공급업체나 같은 선택지를 공유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자체 개발과 실험으로 그 조건을 바꾸는 브랜드도 있을 것이다.
업계에는 미래를 함께 바라보게 하는 정보도 있다. WGSN은 Coloro와 함께 시즌 주요 컬러를 2년 앞서 예측한다고 설명한다. Première Vision은 소재 기업들의 신제품과 시즌 컬러·소재 방향을 모아 보여 준다. 적어도 창작자가 혼자 감각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 주는 사례다. WGSN의 컬러 예측 방식 · Première Vision의 트렌드 공간
여기서 나는 예측이 선택에 다시 영향을 주는 순환을 생각하게 된다. 여러 사람이 같은 색을 중요하게 본다면 소재 개발과 바잉에서 그 색이 더 자주 검토될 수 있고, 매장과 화면에서 자주 보이는 색은 다시 소비자에게 익숙해질 수 있다.
이런 ‘자기실현적 예측’은 트렌드를 설명하는 한 가지 가설이다. 그렇다고 예측 기관이 유행을 전부 결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예측은 빗나갈 수 있고, 브랜드도 소비자도 그 방향을 거부할 수 있다. 모든 트렌드가 같은 1~2년의 시간표를 따르는 것도 아니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면,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컬렉션 자체만이 아니라 매거진이 골라 묶어 놓은 컬렉션이기도 하다. 수많은 서로 다른 룩 중에서 비슷한 색과 형태를 모으면 하나의 흐름이 더 선명해진다. 이름을 붙이고 반복해서 보여 주는 순간, 그 흐름은 더 쉽게 공유된다.
올드머니 룩이 크게 주목받던 때의 화이트와 아이보리도 떠오른다. 2023년 패션 기사들은 차분한 뉴트럴 컬러를 올드머니 스타일의 요소로 소개했고, 화이트와 아이보리 니트 역시 그 안에서 다뤘다. 당시 트렌드 기사 · 화이트·아이보리 스타일링 사례
화이트와 아이보리가 새로 생긴 색은 아니었다. 그런데 ‘올드머니’라는 이름 아래 묶이자, 익숙한 셔츠와 니트가 대대로 이어진 부와 여유, 드러내지 않는 고급스러움의 이미지로 새롭게 읽혔다. 나는 그때 사람들이 색 자체뿐 아니라 그 색이 상징하는 삶의 분위기를 입고 싶어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이름이 붙으면서 오래된 조합이 다시 갖고 싶은 스타일이 되는 것. 미디어가 트렌드를 보여 주는 동시에 키워 가는 방식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래서 ‘왜 모두 비슷할까?’에는 실제 디자인의 수렴뿐 아니라 ‘왜 우리가 비슷한 것들을 더 많이 보게 될까?’라는 질문도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트렌드를 읽어 주는 미디어는 관찰자이면서 편집자이기도 한 셈이다.
소비자 역시 마지막에 받아 입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거리의 스타일, 하위문화, 오래된 옷을 다시 입는 방식, 예상과 다른 제품의 인기가 브랜드의 다음 선택으로 돌아올 수 있다. 유행이 항상 런웨이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온다고 보고 싶지는 않다.
나는 유행이 돌아올 때, 지금 돈을 쓰는 사람들이 10대와 20대에 무엇을 좋아했는지를 생각해 본다. 그때 갖고 싶었지만 살 수 없었던 옷과 가방을, 구매력이 생긴 지금 다시 선택하는 건 아닐까. 돌아오는 것은 옷의 모양만이 아니라, 미뤄 두었던 욕망일 수도 있다.
Y2K의 귀환도 그런 관점에서 흥미롭다. 다만 가장 구매력이 높은 세대의 추억이 언제나 유행을 결정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재회인 스타일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처음 발견하는 새로움일 수 있기 때문이다. Vogue 역시 Y2K 부활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향수와 Z세대의 적극적인 수용을 함께 다룬다. Y2K 리바이벌에 관한 기사
그러니 내가 궁금한 건 ‘어느 나이대가 돈을 가장 많이 쓰는가’ 하나만은 아니다. 누가 유행을 눈에 띄게 만들고, 누가 실제 구매로 이어 가며, 브랜드는 누구의 기억을 다시 상품으로 만드는가. 이 역할들이 꼭 같은 세대에 모여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앞서 떠올린 올드머니 룩은 과거의 취향뿐 아니라 지금의 욕망으로도 읽힌다. 화려한 로고로 ‘이 브랜드를 살 수 있다’고 보여 주기보다,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원래부터 여유가 있었던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 내게 화이트와 아이보리, 절제된 옷차림의 매력은 그런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과시가 사라졌다기보다, 과시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은 아닐까.
Y2K가 ‘그때의 나’ 혹은 ‘경험하지 못한 그 시절’을 입는 일이라면, 올드머니는 ‘지금 되고 싶은 사람’을 입는 일일 수도 있다. 서로 달라 보이는 유행도 결국 사람들이 어떤 시간을 그리워하고, 어떤 삶을 욕망하는지에서 만난다. 나는 그 기억과 욕망이 지금의 구매력, 미디어, 브랜드의 선택과 만나는 지점을 보고 싶다.
2019년 봄·여름 오트 쿠튀르의 이 드레스는 거대한 튈 위에 “I’M NOT SHY I JUST DON’T LIKE YOU”라고 말한다. 브랜드의 공식 설명 역시 소셜미디어 캡션 같은 짧은 문장과 과장된 로맨틱 드레스의 결합을 이야기한다. Viktor&Rolf 공식 컬렉션 아카이브
내게는 동시대의 언어가 옷의 표면으로 올라온 장면처럼 보인다. 낭만적인 드레스와 직설적인 말투가 충돌하면서, 예쁜 옷 이상의 태도가 생긴다. 다만 이 작품 하나가 내 트렌드 해석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오트 쿠튀르를 수천 벌의 기성복과 같은 경제성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직접적인 판매량뿐 아니라 실험, 공예, 브랜드 이미지 같은 목적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경제적 조건은 존재하지만, 그 조건이 모든 창작을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점도 이 이미지와 함께 남겨 두고 싶다.
‘트렌드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지되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가고 싶다. 누군가 시대의 신호를 감지하고, 자기 언어로 형태를 만들고, 산업과 미디어와 소비자가 그것을 선택하고 퍼뜨리는 과정까지 포함해서 보고 싶다.
내게 트렌드는 시대의 감각이 경제적 조건을 통과하고, 사람들의 선택 속에서 반복되며 눈에 보이는 흐름이 되는 것이다.
이는 유행을 설명하는 유일한 법칙이 아니라, 내가 패션을 읽는 방식이다. ‘지금 많이 보이는 색’ 뒤에 어떤 욕망과 제약, 어떤 선택이 있었는지를 거꾸로 따라가 보는 것. 그 끝에는 옷보다 먼저,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가 있을 것 같다.
야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건조함과 습도가 다르고, 피부 톤과 피부 타입 역시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중동을 특정 피부색이나 하나의 기후로 상상하는 시선부터 다시 봐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고가 제품만 찾는 시장이라는 이미지에도 선을 그었다.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부터 프리미엄과 럭셔리까지 서로 다른 선택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 대담이 내게 흥미로웠던 건 현지 소비자가 추상적인 ‘중동 고객’이 아니라, 자기 피부와 일상에 맞는 것을 고르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향을 좋아한다는 말만으로 얼굴용 크림에도 같은 향을 넣을 수는 없다. 향을 즐기는 방식과 제품을 평가하는 기준을 함께 읽어야 한다.
한국식 광채 피부에 관한 답변도 기억에 남았다. 야라는 건강하고 빛나는 피부에 대한 선호가 현지에도 있지만, 얼굴 전체를 똑같이 빛나게 하기보다 특정 부위에 광을 주고 T존에는 파우더를 사용하는 식으로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계절과 기후에 따라 가벼운 사용감을 찾는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같은 제품과 같은 미적 취향이 이동해도, 실제로 쓰는 방식은 달라진다. 내게 이것은 현지화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구체적인 장면이었다. 한국에서 만든 제품을 수출하는 것과, 그 제품이 현지의 하루 안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렇다고 향의 문화적 무게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우드와 바쿠르를 몸뿐 아니라 옷과 공간까지 이어지는 일상의 향으로 소개하는 두바이 관광청의 설명을 보면, 향이 마지막에 한 번 뿌리는 장식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 문화적 맥락은 현장 대담과 별도로 참고한 자료다. 우드·바쿠르 문화 소개
모두가 같은 순서와 농도로 향을 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차이를 체취 하나로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익숙한 향, 사람을 맞이하는 방식, 자신을 표현하는 습관까지 함께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다. 향을 겹치는 정성과 얼굴용 제품에서 무향을 선택하는 판단은 한 사람의 일상 안에서도 공존할 수 있다.
Vogue의 「We All Now Want a Perfume That Tells a Story」는 향을 원료의 목록보다 장면과 서사로 설명하는 흐름을 다룬다. 무지개처럼 뚜렷한 냄새가 없는 대상까지 향의 출발점이 된다. Chloe Schama의 기사 읽기
이 이야기를 현장에서 들은 말과 함께 놓으니, 내 질문은 ‘얼마나 진해야 할까’에서 ‘무엇을 떠올리게 해야 할까’로 넓어졌다. 내게 바닐라는 거대한 디저트였고, 야라에게 머스크는 집을 떠올리게 하는 향이었다. 향의 현지화에는 강도를 조절하는 일뿐 아니라 그 향이 어떤 기억과 기분에 닿을지 이해하는 일도 포함되지 않을까.
야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준비하며 한국의 제조사를 찾아왔던 과정도 이야기했다. 동시에 브랜드 이름과 콘셉트, 제품명에 담은 지역의 정체성에서 나아가, 사우디와 중동의 원료를 제품 개발에 더 연결하고 싶다는 방향을 밝혔다. 모든 제품에 이미 현지 원료가 쓰였다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이야기였다.
나는 이 조합이 흥미로웠다. 한국의 제조 기술을 활용한다고 해서 사우디 브랜드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K-뷰티가 현지의 향과 생활 방식을 이해해 제품을 바꾼다고 해서, 한국에서 출발했다는 의미까지 사라질까?
‘클린’은 곧 무향이라는 뜻도 아니고, K-뷰티 전체가 하나의 향이나 제형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다움은 특정 향료보다 제품을 설계하는 관점, 제형을 다루는 기술, 사용자의 불편을 발견하고 개선하는 방식에 남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시작했다는 사실과, 한국인의 취향만을 위해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는 같지 않다.
향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결국 제품을 쓰는 사람에게로 돌아왔다. 야라는 메이크업이 묻어 지저분해지는 흰색 패키지에 대한 고객 의견과, 이를 더 실용적으로 바꾸려는 과정도 소개했다. 좋은 제품을 한 번 사게 만드는 것과, 의견을 듣고 고쳐 다시 사게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화도 비슷하지 않을까. ‘중동이니까 강하게’, ‘한국이니까 은은하게’라는 결론보다, 고객이 언제 바르고 무엇과 겹쳐 쓰며 어떤 불편을 느끼는지 묻는 일. 내가 좋아하는 감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각만을 세계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어떤 공항의 향이 강하게 느껴지고 바닐라 로션 앞에서는 망설일 것 같다. 하지만 인코스메틱에서 들은 이야기는 그 낯섦을 취향의 우열이 아니라, 내가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생활의 차이로 바라보게 했다.
이상하게도 단종되고 나니 내 기억 속 비틀은 더 비틀다워졌다. 더 이상 연비도, 트렁크 크기도, 뒷좌석 헤드룸도 비교하지 않는다. 그냥 그 둥근 실루엣 하나가 먼저 떠오른다.
이제 와서 그 선배의 애매한 메탈릭 연두색 비틀을 생각하면 승차감보다 디자인이 먼저 기억난다. 머리를 몇 번 부딪혔던 것도.
뭐, 그 정도 디자인이면 지금도 감수할 것 같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