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브랜드의 ‘비용’을 회사는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사랑받는 디자인과 지속 가능한 사업은 같은 말일까. 첫 차로 꿈꿨던 폭스바겐 비틀을 떠올리며.

취업하면 꼭 사고 싶었던 첫 차
대학교 때 내게는 취업해서 돈을 벌면 꼭 사고 싶은 첫 차가 있었다. 폭스바겐 비틀. 학교 선배가 조금 애매한 메탈릭 연두색 비틀을 타고 다녔다. 색은 솔직히 내 취향이 아니었는데, 차의 디자인은 충격적이었다. 길에 세워 놓으면 멀리서 봐도 비틀이었다. 자동차에 별 관심 없는 사람도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 소유감이 확실한 차였다. 승차감은…… 음. 뒷좌석에 타고 가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머리가 아치형 창문틀에 부딪혔던 기억이 있다. 독일차니까 뭔가 대단할 줄 알았는데, 그때의 내 감상은 “아우토반의 나라가 만든 차인데, 서스펜션은 대체 뭐야?”였다. 그래도 결론은 늘 같았다. “이 정도 디자인이면 감수할래.” 그게 비틀이었다.
그런데 폭스바겐이 비틀을 끝냈다
몇 년 뒤 우연히 폭스바겐이 만든 비틀 헌정 영상을 봤다. 2019년형을 마지막으로 비틀을 보내주는 영상이었다. 실제로 2019년 7월 10일, 멕시코 푸에블라 공장에서 마지막 비틀이 생산됐다. 처음엔 꽤 충격이었다. 아니, 이런 헤리티지를 버린다고? 폭스바겐에는 Golf도 있고 Polo도 있고 Passat도 있지만, 내게 비틀의 상징성은 특별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도대체 왜? 판매량을 찾아보고 나니, 아쉽다는 마음과 별개로 회사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감성은 살아 있었는데, 판매량은 줄고 있었다
2011년 등장한 마지막 세대 비틀은 폭스바겐 스스로도 라이프스타일 모델이라고 소개했던 차다. Golf와 여러 부품을 공유하면서도 디자인과 개성을 상품가치로 삼았다. 문제는 사람들이 비틀을 좋아하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점이었다.
| 연도 | 판매량 |
|---|---|
| 2013 | 43,134대 |
| 2014 | 29,182대 |
| 2015 | 22,667대 |
| 2016 | 15,667대 |
| 2017 | 15,166대 |
| 2018 | 14,411대 |
| 2019 | 17,215대 |
2013년 43,134대에서 2018년 14,411대. 미국 판매는 약 66.6% 줄었다. 마지막 해인 2019년에는 17,215대로 반등했지만, 2013년 수준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었다. 이 숫자는 미국 시장의 판매량이지 글로벌 판매량이나 모델별 손익은 아니다. 연도별 판매 자료
이쯤 되면 질문이 달라진다. “비틀을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그중 실제로 신차 비틀에 돈을 내는 사람은 얼마나 남았는가?”
LOVE ≠ DEMAND
브랜드 자산이 강하다고 반드시 좋은 사업은 아니다. 비틀에는 돈으로 만들기 어려운 자산이 많았다. 헤리티지, 인지도, 독보적인 실루엣, 향수, 대중문화, 팬덤. 무엇보다 길에서 1초 만에 알아보는 디자인.
그런데 자동차를 선택할 때는 공간, 승하차 편의성, 활용성, 연비 같은 현실적인 조건도 함께 따진다. 둥근 지붕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시절 뒷좌석에 앉은 나는 여전히 머리를 부딪혔다.
더 어려운 문제는 기회비용이다
나는 “판매가 줄어서 단종됐다”는 설명만으로 이 이야기를 끝내고 싶지 않다. 기업의 질문은 한 단계 더 나아가기 때문이다. 이 브랜드 자산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자동차 한 모델을 유지하려면 생산라인뿐 아니라 개발, 설계, 인증, 금형, 부품과 공급망, 품질관리, 마케팅, 딜러 교육, 재고, 그리고 다음 세대 모델까지 생각해야 한다. 전동화라는 큰 전환기에는 같은 돈과 인력을 어디에 쓸지가 더 중요해진다.
실제로 단종 발표 당시 폭스바겐 미국 법인은 가족 중심의 종합 자동차 브랜드로의 전환과 전동화 전략을 언급하며, 당장 비틀을 대체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당시 발표문
여기서 내가 떠올리는 질문은 이렇다. 판매가 줄어드는 아이콘의 다음 세대에 투자할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하는 SUV와 EV에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할 것인가. 폭스바겐 내부의 모델별 손익이나 투자 계산을 확인한 건 아니다. 공개된 결정을 보며 회사라면 무엇을 따졌을지 생각해 본 것이다.
그렇다면 폭스바겐은 비틀을 버린 걸까?
나는 오히려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Final Edition을 만들었다. 과거 모델을 떠올리게 하는 색과 크롬 디테일, 전용 로고를 넣어 작별도 하나의 브랜드 경험으로 만들었다. Final Edition 공식 소개
폭스바겐이 비틀의 기억까지 지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 이상 만들고 팔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아직 사랑받고 있을 때 제대로 끝내는 것이 헤리티지를 보존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제품을 없앰으로써 브랜드를 보존하는 것.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그 가능성이 흥미롭다.
브랜드의 감성에도 비용이 든다
브랜드 일을 하다 보면 쉽게 이런 말을 한다. “이건 우리 브랜드의 헤리티지입니다.” “이 제품은 상징성이 있습니다.” “오랜 고객들이 좋아합니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기업은 한 가지 질문을 더 해야 한다.
연간 10억을 쓰면서? 100억을 쓰면서? 적자를 감수하면서? 아니면 다른 성장사업의 투자를 포기하면서까지? 이 금액들은 비틀의 실제 비용이 아니라, 감성을 지키는 대가를 생각해 보기 위한 가정이다.
브랜드에는 재무제표에 온전히 잡히지 않는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지키는 데도 돈이 든다. 어느 순간부터 그 돈은 단순한 유지비가 아니라 기회비용이 된다. 비틀은 브랜드 가치가 없어서 사라진 제품이 아니라, 강한 상징성을 가지고도 생산이 끝난 제품이라는 점에서 오래 생각하게 한다.
남겨 둔 질문 / AN OPEN QUESTION
그 감성을 유지하기 위해, 회사는 얼마까지 지불할 것인가?
그래도, 그 정도 디자인이면
이상하게도 단종되고 나니 내 기억 속 비틀은 더 비틀다워졌다. 더 이상 연비도, 트렁크 크기도, 뒷좌석 헤드룸도 비교하지 않는다. 그냥 그 둥근 실루엣 하나가 먼저 떠오른다.
이제 와서 그 선배의 애매한 메탈릭 연두색 비틀을 생각하면 승차감보다 디자인이 먼저 기억난다. 머리를 몇 번 부딪혔던 것도.
뭐, 그 정도 디자인이면 지금도 감수할 것 같기는 하다.
Volkswagen Newsroom — Beetle (2011–2019) · 생산 종료일과 모델 역사
Volkswagen Newsroom — Final Edition 발표 · 2018.11.28
Volkswagen of America · Marketwired — 2013년 미국 판매 발표
Volkswagen Beetle (A5) — 연도별 미국 판매 집계와 원자료 링크
Volkswagen 발표문 전재 — Final Edition·단종 및 전략 방향 · 2018.09.13
승차감은 개인적인 탑승 기억입니다. 미국 판매량의 변화와 생산 종료는 별개의 지표·사건이며, 단종의 기회비용과 헤리티지에 관한 문장은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모델별 손익이나 단종 의사결정의 내부 자료를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
Yuri Choi의 개인적인 관찰과 질문을 담았습니다. 참고한 자료는 본문과 출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