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인더 아이패치, 그 혁신은 누구의 것인가?
새로운 아이패치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용기를 돌리는 동작이었다. 그 사용법은 누구의 기술일까.

눈에 들어온 장면
서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아이패치 용기들의 이미지를 봤다. Fenty Skin, Glow Recipe, Huda Beauty. 색과 이름은 다른데, 소비자가 놀라는 장면은 닮아 있었다. 돌린다. 즉석에서 패치가 잘린다. 한 장씩 꺼낸다. ‘누가 누구를 베꼈지?’라는 질문이 나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화장품을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다른 곳에 눈이 갔다. 이 사용 방식을 처음 설계한 곳은 브랜드일까, 용기회사일까?
왜 관심이 갔을까
나는 먼저 용기 제조사의 기술과 특허, 그리고 독점 계약이 떠올랐다. 브랜드가 이름을 붙여 출시했다고 해서, 그 제품 안의 모든 기술을 브랜드가 소유하는 것은 아니니까. Vacation에서는 패키지가 제품을 사용하는 즐거움이 되는 순간을 봤다. 이번에는 그다음 질문이다. 소비자가 가장 강하게 기억하는 경험을 우리가 만들지 않았다면, 적어도 그 경험을 우리만 쓸 수 있는 권리는 확보했을까? 제형과 성분, 컬러와 브랜드 서사는 각각 다를 수 있다. 그런데 고객의 기억에는 ‘돌리면 아이패치가 잘려 나오는 제품’이라는 한 문장만 남을 수도 있다. 기술을 가진 회사와 그 기술로 기억되는 브랜드가 꼭 같은 것은 아니었다.
브랜드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시작될까
보통 우리는 브랜드가 먼저 방향을 정하고, 서플라이어가 그 아이디어를 구현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출발점이 반대인 경우도 있다. 패키징 업체나 ODM이 먼저 새로운 기술과 제형을 개발해 여러 브랜드에 제안하고, 브랜드는 그중 시장성이 있어 보이는 것을 선택한다. Beauty Independent가 만난 업계 관계자들도 이번 그라인더 용기를 공급사의 혁신이 여러 브랜드의 제품 기획으로 확산된 사례로 설명한다. 공급사와 브랜드의 관계를 다룬 업계 인터뷰
공급사는 주문받은 물건만 만들지 않는다. 어떤 기술이 있고, 얼마에 언제까지 만들 수 있는지를 제안하며 제품 기획에도 영향을 준다. 브랜드는 고객의 불편이나 판매 현장의 반응을 전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공급사가 다시 기술을 고치는 식이다.
그렇다고 브랜드와 공급사가 늘 같은 것을 원하는 건 아니다. 브랜드는 경쟁사와 구별되는 경험을 원하지만, 공급사는 개발한 기술을 여러 고객에게 공급하며 투자비를 회수하고 사업을 키울 동기가 있다. 그 자체가 누구의 잘못은 아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어디까지 함께 개발하고, 누가 어떤 권리를 가질지 정해야 한다.
걱정되는 건 공급사가 내민 신기한 제품을 고르다 보면, 정작 우리 브랜드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공급사의 같은 선택지를 보고 비슷한 시기에 제품을 내놓는다면, 각자의 로고가 달라도 소비자가 기억하는 경험은 닮아갈 수 있다. 좋은 기술을 찾았어도, 왜 우리 브랜드가 써야 하는지는 따로 답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와, 신기하다’ 다음에 남을 것을 먼저 기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연구해 온 성분, 잘 만든 제형, 다시 쓰고 싶어지는 사용감이 먼저 있어야 한다. 무엇을 담을지 정한 다음, 그것에 잘 맞는 용기를 고르는 순서다. 공급사는 그 방향을 함께 구현하는 파트너이지, 브랜드가 왜 존재하는지까지 대신 결정해 주는 곳은 아니니까.
브랜드보다 먼저 용기를 개발한 회사가 있었다
펌텍코리아까지 함께 살펴보게 된 질문이었지만, 이번에 확인한 대한민국 패키징 대전의 ‘리필러블 그라인딩 아이패치 용기’는 주식회사 삼화(SAMHWA)의 제품이다. 공식 수상 자료는 하이드로겔을 직접 충진하고, 사용 직전에 필요한 양을 절삭하는 구조를 설명한다. 소비자의 눈길을 끈 사용법은 용기를 개발하는 단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대한민국 패키징 대전 · 삼화
삼화 명의의 미국 등록특허 Grinding compact container(US12484681B2)도 확인된다. 다만 관련 특허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사진 속 각 제품이 그 특허의 어느 청구항에 해당하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수상한 리필형 용기가 각 브랜드 제품과 완전히 같은 사양이라는 뜻도 아니다. 비슷하게 돌려 쓰는 용기를 모두 같은 기술이나 같은 권리로 묶을 수는 없다. 공개 특허 문헌
닮은 용기만으로 누구의 잘못인지 정할 수 있을까
공급사가 개발한 용기를 여러 브랜드가 선택하는 구조라면, 외형과 사용법이 비슷하다는 것만으로 브랜드 간 표절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비독점적으로 공급되는 기술을 구매한 것과, 경쟁사의 독점적 권리를 침해한 것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용기회사 특허니까 아무 문제도 없다’고 결론 낼 수도 없다. 특허의 권리 범위와 별개로, 공급사가 브랜드와 어떤 약속을 했는지가 남는다. 계약이 특정 기간·지역·제품군을 제한했는지, 공동 개발 과정에서 권리를 어떻게 나눴는지에 따라 판단은 달라진다. 나는 공개되지 않은 계약을 추정해 어느 브랜드나 제조사의 잘못을 정하고 싶지 않다.
이 사건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범인이 아니라 기획 단계에서 확인했어야 할 권리의 범위다. 멋진 용기를 발견했다는 흥분 다음에는 ‘누가 더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와야 하지 않을까.
자체 몰드를 만들면 경험도 내 것이 될까
여기서는 내 생각도 고쳐야 했다. 자체 몰드를 제작하는 것, 그 금형을 소유하는 것, 디자인권이나 기술 특허를 갖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WIPO는 디자인권은 제품의 외관을, 특허는 새로운 기술적 해결책을 보호하는 것으로 구분한다. 금형 개발비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권리가 자동으로 넘어오거나 유사한 사용 경험 전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WIPO · 디자인권과 특허의 차이
그래서 제품을 기획할 때는 선택지를 나눠 보고 싶다. 빨리 출시해야 한다면 비독점 용기를 쓰면서 제형과 서비스로 차이를 낼 수 있다. 일정 기간의 선점이 중요하면 공급사와 독점 사용의 범위를 협의할 수 있다. 경험 자체가 핵심 자산이라면 공동 개발이나 자체 개발을 선택하고, 금형·설계·기존 기술과 새로 만든 기술의 권리 귀속까지 함께 정해야 한다.
무조건 직접 개발하는 것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지킬 만한 차별성인지, 그 투자로 얻는 권리가 무엇인지부터 계산해야 한다. 구체적인 보호 가능성과 계약 효력은 개별 기술·국가·계약에 대한 전문 검토가 필요한 영역이다.
새로운 경험을 사는 것과, 우리만의 이유를 만드는 것
이번 이미지를 보며 내가 가장 오래 생각한 것은 브랜드가 기획한 제품과 소비자가 기억한 제품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기획서에는 성분과 시험, 효능 메시지와 디자인이 빼곡해도, 영상 속 한 번의 동작이 그 모든 것보다 먼저 기억될 수 있다.
그 경험이 다른 브랜드에서도 가능해지면 기술이 갑자기 평범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만의 것’이라는 설명은 약해진다. 그래서 나는 패키지 개발비를 단순한 용기 단가로만 보고 싶지 않다. 어떤 비용은 더 나은 사용성을 위한 것이고, 어떤 비용은 일정한 차별성을 지킬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같은 용기를 쓴다고 브랜드 가치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고객에게 잘 맞는 제형, 믿을 만한 품질, 납득할 만한 가격은 여전히 중요하다. 용기가 같아진 뒤에도 우리 제품을 다시 사는 이유가 있는지, 그때 더 분명히 알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확보한 것은 새로운 용기였을까. 아니면 고객이 우리를 기억할 이유였을까.
남겨 둔 질문 / AN OPEN QUESTION
제품의 가장 강력한 차별점이 패키지 UX라면, 브랜드는 그 경험을 사용하는 데서 끝날 것인가, 일정한 범위에서 독점할 것인가, 직접 개발할 것인가? 그리고 경쟁사도 같은 경험을 제공하는 날, 고객이 여전히 우리 브랜드를 골라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Yuri Choi의 개인적인 관찰과 질문을 담았습니다. 참고한 자료는 본문과 출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