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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정리하는 노트 / FASHION · CULTURE

트렌드는 어디에서 오는가?

잘록한 허리의 밝은 재킷과 블랙 스커트를 입고 자전거와 나무 상자 앞에 서 있는 인물의 사진
Dior-New Look

패션위크가 끝나고 매거진이 정리한 트렌드를 읽을 때마다 궁금했다. 서로 다른 브랜드가 각자 준비한 컬렉션인데, 왜 비슷한 컬러와 소재, 실루엣이 반복될까.

누가 누구를 따라 했다고 보기에는 컬렉션을 준비하는 시간이 겹친다. 같은 옷을 만들기로 약속한 것도 아니다. 나는 그 이유를 그들이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데서 찾는다. 같은 변화를 각자의 삶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옷을 만들고, 그 옷을 나란히 놓으면 공통점이 드러난다.

시대는 창작자의 사생활과 떨어져 있지 않다

창작자의 감각은 패션 안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치와 경제, 문화가 영향을 주고, 아주 개인적인 생활도 영향을 준다. 누구를 만나고 헤어졌는지, 어떤 도시에서 살았는지, 요즘 무엇이 불안하고 무엇에 마음이 놓이는지.

경제 뉴스가 누군가에게는 먼 숫자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작업실을 지킬 수 있을지의 문제다. 그러니 창작자의 사생활은 시대와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가 가장 구체적으로 들어오는 곳이다.

그 경험은 원단의 무게, 몸과 옷 사이의 여유, 어깨의 각도와 기장을 고르는 손끝에 묻어난다. 꼭 말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옷을 먼저 만들고 나서야, 자신이 무엇에 반응했는지 알게 되기도 한다.

같은 시대를 읽어도, 같은 옷이 나오지는 않는다

불안한 시기에 누군가는 몸을 감싸는 옷을 만들고, 누군가는 과장된 색과 화려한 형태로 벗어난다. 정반대의 옷이 같은 감정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옷이 얼마나 닮았느냐가 아니라, 각자가 무엇을 보고 그 형태를 골랐느냐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필요한 것은 시대를 꿰뚫는 통찰이다. 사람들이 흘리는 신호의 파편을 모아, 아직 아무도 말하지 않은 것을 제안하는 일. 잘 팔릴 옷을 고르는 능력이 아니라, 지금의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엇을 다음 모습으로 내놓는지를 나는 보고 싶다.

사람들이 말하기 전에, 먼저 제안하는 사람

이미 많이 보이는 옷을 알아채는 일과, 앞으로 사람들이 원하게 될 옷을 제안하는 일은 다르다.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은 두 번째다.

그 사람이 보는 것은 반복되는 컬러가 아니다. 사람들이 자꾸 꺼내는 불평, 달라진 생활, 어떤 이미지에 유독 반응하는 모습. 아직 이름 없는 변화들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늘 알지는 못한다. 불편하다는 건 알아도 무엇이 그것을 해결할지는 모른다. 창작자는 그 마음에 먼저 형태를 준다. 그렇게 나온 옷은 처음엔 낯설지만, 어느 순간 자연스러워진다. 우리는 그 옷을 보고 나서야 이런 걸 입고 싶었다는 걸 안다.

시대를 앞서간다는 건 미래를 맞히는 일이 아니다. 현재 안에서 이미 시작된 변화를 먼저 느끼고, 형태로 보여 주는 일이다.

1947년, 디올이 꺼낸 다음 모습

1947년 2월 12일, 크리스챤 디올은 첫 컬렉션을 선보였다. 잘록한 허리와 부드러운 어깨, 꽃잎처럼 펼쳐지는 스커트. 그는 이 라인을 '코롤(Corolle)', 꽃부리라고 불렀다. 하퍼스 바자 편집장 카멜 스노우가 정말 새로운 모습이라며 감탄했고, 그 말이 그대로 '뉴룩'이라는 이름이 됐다.

그 꽃은 디올의 사생활에서 왔다. 그는 노르망디 그랑빌의 바닷가 집에서 어머니에게 정원 가꾸는 법을 배웠고, 평생 장미와 은방울꽃을 사랑했다. 지금 그 집은 디올 박물관이 됐다.

시대도 그 옷 안에 있었다. 전쟁 동안 여성들은 원단 배급 때문에 단순한 일자 스커트를 입었다. 디올은 그 반대를 내놓았다. 원단을 몇 배로 쓴 치마를 원한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지만, 오랜 절제 끝에 다시 아름다워지고 싶은 마음은 이미 있었다. 사치스럽다는 비판도 따랐지만, 사람들은 결국 그 실루엣을 골랐다. Complete France · 75 years of Dior

한 사람의 정원과 한 시대의 피로가, 하나의 실루엣에서 만났다.

유행과 트렌드는 다르다

특정한 옷차림이 다시 인기를 얻는 일과, 옷을 고르는 기준 자체가 달라지는 일은 다르다.

내게 Y2K의 귀환은 전자다. 기억 속 옷을 지금 다시 고르고,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는 오래된 옷이 새로운 멋이 된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건 되돌아온 스타일이다.

올드머니에서는 옷보다 그 뒤의 욕망이 보인다. 화이트와 아이보리, 절제된 니트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달라진 건 부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로고로 증명하기보다, 원래부터 여유 있던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 과시가 사라진 게 아니라, 과시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경계는 겹친다. 다만 내가 구분하고 싶은 것은 지금 어떤 옷이 인기 있는가와, 사람들이 왜 그 옷을 원하게 되었는가다.

그래서 나는 옷 뒤의 사람을 본다

모든 제안이 트렌드가 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에 맞는다고 느낀 것만 퍼진다. 누군가 따라 입고, 다른 창작자가 다시 해석하고, 미디어가 이름을 붙인다.

“혁명을 일으켰군요, 크리스챤! 이 드레스들은 ‘뉴 룩’ 그 자체예요.”

미국 <하퍼스 바자>의 편집장 카멜 스노우(Carmel Snow)는 무슈 디올의 데뷔 쇼인 1947년 봄·여름 컬렉션을 본 후 이런 말을 남겼다. 그 한마디가 디올의 실루엣에 ‘뉴 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Rizzoli · Dior: The New Look Revolution

낯설던 형태가 익숙해지고, 마침내 그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 된다.

유행한 옷을 모아 보면 비슷한 색과 실루엣이 보인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그 옷들이 닮았다는 사실보다, 왜 그 시기에 그런 옷을 만들고 입고 싶어졌는가다.

이제 패션위크 뒤에 비슷한 옷이 보이면, "이번엔 이게 유행이구나"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함께 목격했을까. 그리고 닮은 옷들 사이에서, 누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다음 모습을 제안하고 있을까.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은 유행을 가장 빨리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삶과 시대를 함께 읽고, 사람들이 아직 말하지 못한 다음 모습을 먼저 제안하는 사람이다.

내게 트렌드는 그렇게 시작된다. 한 사람이 시대를 읽어 만든 옷이, 어느 순간 여러 사람의 지금을 설명하게 되는 일.

남겨 둔 질문 / AN OPEN QUESTION

우리가 유행하는 옷을 산다는 건, 그 디자인을 좋아해서일까. 그뿐 아니라 그 옷이 약속하는 시대의 분위기와 삶도 갖고 싶은 걸까? 그리고 지금, 아직 옷이 되지 않은 시대의 변화는 무엇일까?

Yuri Choi의 개인적인 관찰과 질문을 담았습니다. 참고한 자료는 본문과 출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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